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저성장시대 기업의 새로운 경영전략 (2013년 7월 29일 한국경제연구원 KERI 칼럼/데일리안 전제)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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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는 소위 뉴 노멀 (new normal)의 시대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경제의 중장기 저성장 기조 고착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은 무엇이며 중장기 저성장이 현실화되면 한국 기업의 경영 전략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점증하고 있는 저성장의 우려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대공황까지 우려되던 글로벌 경제위기가 각국 정부의 대규모 유동성 투입과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은 면하였지만 선진국 경제는 저성장 기조가 최소한 수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경제 위기 이전 과도하게 증가하였던 민간 부문 부채의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이 지속되는 한편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과 실업률 급증으로 위한 소비 위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유럽중앙은행 (ECB)의 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로 인해 남유럽 경제가 최악의 위기는 모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저성장 상황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아이켄그린 교수는 유럽이 10년간 저성장을 지속할 확률이 80%가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은 다행히 최근 소비와 부동산이 살아나고 있어 유럽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지만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천문학적 정부 부채로 인해 고성장 기조로의 복귀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일본은 최근 소위 아베노믹스에 의한 공격적 양적 완화 정책과 재정투입, 엔화 가치 하락 유도 정책 등으로 작년 3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3.5%로까지 하락했던 최악의 침체 국면에서 급속히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GDP 대비 237%에 달하는 과도한 정부 부채와 20년 이상 지속된 저성장으로 인한 경제 체력 저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고성장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아베노믹스가 결국 실패로 귀결되면 일본은 신용등급 및 국채가격 하락으로 인한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일본발 경제위기와 엔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은 저출산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하고 있어 선진국의 저성장 국면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전망이다.


이처럼 선진국 경제가 저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는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시장이다. 리만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가 대공황으로 비화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 등 신흥시장이 잘 버텨 주면서 고성장을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신흥시장이 고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세계 경제 전체의 저성장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요 수출 시장인 선진국의 경제 침체는 신흥시장의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작년도 중국 경제 성장률이 급락하여 연평균 7%대로 떨어진 것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출 부진이었다. 특히 선진국의 수요는 침체된 상황에서 전세계 철강 산업은 3억 톤의 공급 과잉에 직면하고 있는 등 주요 제조업에서 전세계적인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천연자원 가격도 조정 받고 있기에 중국 등 신흥시장 국가 역시 고성장을 지속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가 최소 3-5년 간 저성장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 수출이 침체될 우려가 큰 상황에서 저성장을 초래할 한국 경제 내부의 구조적 리스크도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어 2016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대가 피크를 치고 내려갈 전망이며,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가격 급락, 전세가격 급등, 소득 양극화 심화로 인해 소비 위축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금년도 한국 경제의 성장률 목표도 2%대에 머물러 있다.


저성장 기조 하에서의 기업 경영


국내외 경제의 중장기 저성장 기조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기업 경영에는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가?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된다면 무엇보다도 현금유동성 확보와 원가절감, 구조조정을 기반으로 한 수익성과 내실 위주 경영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저성장 국면이 지속된다면 재고와 매출채권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하며,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경영을 해야 한다. 또한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경영상의 핵심요소를 중심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된다면 리스크 요인 관리도 중요해지는데, 삼성이 외환위기 직후에 하였던 것처럼 회사가 ‘망하는 시나리오’ 워크샵을 개최하여 회사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리스크 요인을 파악한 후 이를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중장기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게 되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여 핵심사업과 핵심역량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는 작업도 꼭 필요하게 된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조정은 필요시 수시로 하면 가장 좋지만 임직원의 충성도를 중시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높으며, 인수합병 시장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위기 상황이나 패러다임 변화시기가 와야 큰 저항 없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할 수 있다. 중장기 저성장 우려도 바로 그러한 상황이기에 호황기에 낀 군살을 빼면서 비주력, 비핵심, 적자 사업은 아웃소싱이나 전략적 제휴, 매각, 또는 최악의 경우 청산을 통해 축소하거나 정리하고 핵심사업에 자원을 보다 집중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원, 고객, 협력사와의 위기 극복의 공감대 형성과 고통 분담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 저성장 국면에서도 여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핵심역량 강화, 창조적 혁신과 신성장 동력 창출을 통해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을 지속할 수도 있기에 무조건 방어적 경영으로 움츠려 들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이 우려되는 것이지 대공황이나 심각한 경제위기 국면은 다행히 모면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 국면을 주력 사업에서의 점유율 제고는 물론 비즈니스 모델 혁신, 국내외 기업 M&A, 국내외 우수인력 확보 등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심각한 불황기는 시장의 지위가 바뀌고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시기로서 한계기업의 도산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시장 점유율 제고가 가능하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도 경쟁력이 취약하거나 무리한 확장을 시도하였던 글로벌 경쟁자들 상당수가 이번 위기로 인해 도산하거나 점유율 저하를 경험하였다. 반면, 그 동안 재무적 건전성과 핵심역량을 강화해 왔던 한국의 핵심 기업들은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와중에 세계 시장 점유율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외환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주력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을 적극 공략하여 신흥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대폭 향상시켰는데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선진국과는 달리 신흥시장의 경제는 상대적으로 잘 버텨 주었던 점도 한국 기업들이 선전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이었다. 이 여세를 몰아 저성장 국면에도 불구하고 핵심사업의 경쟁력과 지배력을 높이고 상대적으로 고성장이 지속될 신흥시장에서의 경쟁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면 저성장 국면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저성장 국면에서도 혁신과 신성장동력 창출에 성공한다면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면 수요자 측면에서 고객 니즈도 변화하게 되는데 이를 먼저 파악하여 새 제품, 기술,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선도하는 기업이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더 나아가 저성장 국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국내외의 저평가된 기업들을 인수한다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제고함은 물론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내재가치가 우수하지만 경기 침체로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거나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한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업 바겐세일 기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선도 기업들은 주력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성장성, 수익성 저하로 고민해 왔기에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저성장 국면이 인수를 통한 기존 산업의 지배력 강화와 신성장동력 확보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해 소비재 산업에서 좋은 브랜드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매물로 나온 상황 하에서 만다리나 덕 등 유럽의 일류 브랜드를 한국 기업들이 연이어 인수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을 옥죄는 경제민주화 논의로 점철되고 있는 작금의 한국 경제 현실은 국내외 경제가 직면한 중장기 저성장 기조 고착화 전망에서 본다면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러한 현실에 실망하여 한국에 투자를 안 하고 오히려 한국에 있던 공장과 사업도 해외로 이전시켜 버린다면 한국 경제는 정말 중장기 저성장의 덫에 빠져 들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 경제가 저출산 고령화와 규제의 덫에 빠져 저성장으로 인한 경제 활력 저하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신성장 동력 확보와 벤처 육성 등 경제 활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규제 강화보다는 기업의 국내에서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강화해야 하며, 내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서비스 산업 육성 및 양질의 고용 창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들도 중장기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내실경영 체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여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혁신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와중에 도약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사례가 잘 보여 주듯이 경쟁력 있는 기업에게는 저성장기가 오히려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성일: 201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