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미주 중앙일보 '미국 대학 저력의 원천' (2000년 10월 28일)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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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컬럼비아대학에서는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여러 모로 다른 학술 행사와는 달랐다.


비공개로 전세계에서 70여명의 학자를 초청하여 진행돼 대부분의 동료 교수들은 행사 자체를 모를 정도였지만, 참가한 학자들은 필자를 비롯한 몇 몇 소장학자를 제외하고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경제, 경영학 교수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또한 미국을 대표하는 학술지원재단인 슬로언 재단, 카네기 보쉬 재단과 더불어 예일대학, 컬럼비아 대학, 펜실베이니아 대학 워튼 스쿨 등이 공동 후원을 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예일대학 총장 및 컬럼비아 대학 부총장이 번갈아 주최한 만찬에서는 넬슨 교수가 지난 40 여년간 보여 준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있어서의 탁월한 업적과 정열에 대한 토론과 연설이 이어져 마치 교주를 찬양하는 무슨 종교 집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틀간 진행된 학술 발표회에서는 넬슨 교수가 큰 공헌을 한 세부적인 분야에서 대가급의 학자들의 논문발표가 이루어졌는데,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60, 70대의 원로 학자들이었음에도 시종 일관 자리를 지키며 진지하게 발표를 경청하고 토론을 전개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학술 토론회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미국 대학의 저력의 원천이 학자들의 진지한 학문 탐구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에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넬슨 교수야말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넬슨 교수는 산업조직론과 경영전략론의 새 지평을 연 진화경제론(evolutionary economics)의 창시자로, 경영학•법학•국제관계학•경제학과 등의 여섯개 학과에 교수직을 보유한 컬럼비아 대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필자는 8년전 워튼 스쿨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을 때, 넬슨 교수의 주도로 출범한 진화경제론 분야의 연례 학술 대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그 학문적 진지함과 스승으로서의 자상함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영광스럽게도 이번 학기에는 지식기반경제에서의 기술혁신 및 창업론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박사과정 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설하였는데, 사실 함께 가르친다기 보다는 필자 자신이 배우는 점이 더욱 많은 것 같다.


항상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넬슨 교수는 그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한 눈을 팔지 않고 고희가 된 고령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세계에만 정진, 이를 지켜 보는 필자를 비롯한 젊은 교수들은 교수의 본분이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다. 


이처럼 학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원로 교수들이 다수를 형성하여 대학의 중심을 잡아 모범을 보이고, 소장교수들이 학자로서의 프로패셔널리즘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그 뒤를 따르는데 컬럼비아대를 비롯한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의 저력 내지 경쟁력의 원천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교수의 업적평가가 매년 학문연구실적에 기반하여 엄정히 이루어지고,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은 교수의 경우에도 학문연구를 등한시하면 연봉재조정시의 불이익과 더불어 동료교수들의 따가운 눈총이 압력으로 작용하는 분위기에서는, 연구와 교육을 등한시하는 일부 한국 교수들을 빗대어 이야기하던 소위 ‘3T 교수’와 같은 말은 듣기 어려운 것이 미국의 일류 연구중심대학이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중 미국대학 교수들의 비중이 계속 높아져, 컬럼비아대에서만 지난 3년간 매년 한 명이상씩 배출하였고, 지난 백년간 수십명의 컬럼비아대 동문과 교수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최근 한국대학에도 학문연구업적을 중심으로 한 교수업적평가제도와 연봉제 등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최소한 젊은 교수들 사이에서는 연구를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교수가 행정적인 일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고 연구와 교육에만 몰두할 수 있는 미국 대학의 여건과는 달리, 한국의 교수들은 본인이 학문적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에도, 행정잡무와 사회봉사, 그리고 한국사회의 혈연, 학연등으로 엃힌 복잡한 인간관계등으로 인해 교수 본연의 업무인 연구와 교육 이외의 일에 아직도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게 현실인 듯하다.


21세기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연구중심대학이 국가경쟁력을 형성하는데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교수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 시급한 과제중 하나임을 강조하고 싶다.


송재용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http://ny.joongangusa.com/Asp/Article.asp?sv=ny&src=opn&cont=0000&typ=1&aid=20001028221619100101


작성일: 200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