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Date2024-10-06
View 39
최근 GE의 잭 웰치 (Jack Welch) 전 회장이 한국 기업의 창조성 부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애플 (Apple)사가 MP3 플레이어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부정확하게 얘기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는 엄연히 한국이 종주국이고, 한때 한국 기업 레인콤의 ‘아이리버(iriver)’ 가 세계 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후발주자였던 애플의 ‘아이팟(iPod)’에게 시장 주도권을 내주었다. 시장을 선점했고 제품의 기능성 측면에서 애플의 아이팟에 뒤질 바가 없었던 레인콤,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왜 애플에 뒤지게 되었을까?
1980년대 초반 VCR이 보급될 당시 소니의 베타맥스(Betamax) 방식 VCR이 JVC와 마쓰시타가 주도했던 VHS 방식 VCR과 자웅을 겨루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베타맥스 방식이 우월하였던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베타맥스 방식은 VHS 방식에 참담히 패배하고,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이 제품들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MP3 플레이어, VCR, 게임 콘솔, 인터넷 포털 등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콘텐트와 같은 보완재가 있어야 가치가 창출되는 소위 플랫폼(platform) 상품이다. 플랫폼 상품의 경우 이를 수용하는 소비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산업 생태계(eco system)에서 협력자들이 보완재를 더 많이 개발, 가치가 상승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보완재에 의한 간접적인 네트워크 효과라고 한다.
VCR 전쟁의 예를 보자. VHS VCR 진영은 경쟁자의 참여를 유도했고, 협력자와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이 방식에 맞는 영화 비디오 등이 더욱 많이 출시됐다. 결국 VHS VCR 보유로 인해 고객 가치가 상승했고, 이에 따라 더 많은 고객이 확보되는 선순환의 메커니즘이 창출됐다. 반면 베타맥스 VCR은 소니가 독불장군식 행태를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이 방식을 채택한 비디오 타이틀의 수가 줄어들었고, 고객이 이탈하는 악순환에 빠져 들었다.
한국이 종주국이었던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됐다. 아이리버 등 한국 제품이 혁신적인 성능과 디자인으로 MP3 플레이어의 초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후발주자였던 애플은 소비자들이 곡당 99 센트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합법적으로 음원을 소유하게 한 ‘아이튠스(iTunes)’ 서비스를 출시해 이를 아이팟과 결합시켜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아이튠스를 통해서 산업 생태계의 협력자인 음원 제공자들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주었다. 자기 몫을 지나치게 챙기기보다는 협력자들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배분하는 상생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결국 다양한 음원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었다. 즉 보완자와의 협력을 통한 플랫폼 리더십 (platform leadership)의 확보와 이를 통한 네트워크 효과의 창출이 애플의 성공요인이었다.
이러한 사례들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최근 한국의 정보통신 업체들은 속속 세계 최초의 기술이나 상품,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표준 장악 및 주도권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MP3 플레이어 이외에 DMB, 휴대인터넷(Wibro) 서비스도 이러한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아직 이러한 플랫폼 상품을 어떻게 표준으로 만들고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와 플랫폼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기능성만을 강조하면서 세계 최초, 최고의 기능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고 플랫폼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플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이 플랫폼 리더십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업 생태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산업 생태계 내의 협력자들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배분하고 이들을 지원해 상생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대규모 시장을 성공적으로 형성시키기 위해서는 경쟁자와의 적극적인 협력도 필요할 수 있다. 표준 장악과 플랫폼 리더십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단기성과주의나 자기 이익 챙기기에 집착하여 독불장군식 행태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협력자들과의 상생을 포기하고 건강한 산업 생태계 형성을 저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휴대인터넷 등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낸 플랫폼 상품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 광범위한 시장을 구축한다면 이른바 ‘샌드위치 코리아’를 극복하는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 협력자들과의 상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범 세계적인 플랫폼 리더십을 추구하는 전략적 사고가 절실히 요청된다.
작성일: 200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