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미주 중앙일보 '한국의 절망, 한국의 희망' (2000년 9월 9일)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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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한국을 다녀 오면서 필자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미국에 온 후 매 년 한 번씩은 한국을 다녀 왔지만, 지난 3년간의 한국 방문은 고국의 장래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경제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인해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 경제위기 직후에 비해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으나, 이번에는 다시 한국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람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몇 개월간 한국신문 기사를 유심히 보면 부쩍 부정적인 기사가 늘어 났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경제의 현실은 제2의 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심각한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금융부문과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이 미흡한 상황에서 유가가 폭등하고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진데다가 내수경기도 하강할 기미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당수의 재벌들이 영업이익으로 은행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기업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상실한 가운데, 모 재벌에서의 경영권 다툼과 그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기업지배구조의 낙후성은 재벌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확인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의 하나 미국경제의 경착륙, 동남아 외환위기의 재발, 내지는 반도체경기의 급강하라는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질 경우 상황은 정말 심각해 질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실토했듯이 향후 2-3년간, 특히 앞으로 6개월간은 한국경제가 재도약하느냐, 아니면 80년대 이후의 남미 경제처럼 반복적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하는 허약한 경제로 전락하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쟁에 몰두하느라 구조조정을 시급히 추진하는 데 필요한 법안조차 처리하지 않는 정치권을 보면서 국민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향후 3년안에 다시 경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40%에 육박한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갈 길은 멀고 험한 데, 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가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집단이기주의에 근거한 집단행동이 분출되고 있는 현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급 룸살롱이 예약하지 않으면 방이 없을 정도로 성황중이며, 이번 여름 해외 여행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데다가, 조기 유학과 해외 어학 연수가 다시 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제적인 불안감에 더하여, 한국에서 만난 지인들은 공교육의 붕괴와 과도한 사교육 열풍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특히 절망하고 있었다. 또 이러한 교육현실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내하더라도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던가 아니면 아예 이민을 가겠다는 방향으로도 표출되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류대학을 나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386세대이며,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 필자에게는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또한 몇 년 전만 해도 필자에게 빨리 귀국하라고 권유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제는 미국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필자를 부러워 하며, 필자에게 귀국을 늦추던가 아예 미국에 눌러 앉으라고 권유하는 상황에 직면하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9년 전 필자가 유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당시 불황에 시달리던 미국을 다소 우습게 보고 한국의 장래를 낙관하던 것이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민이 다시 상황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경제 위기 직후 그러하였듯이 일치단결하여 구조조정과 개혁에 매진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오히려 한국의 장래를 위한 좋은 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97년 경제위기에 봉착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재벌 개혁, 금융구조 개혁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국 경제의 환부는 더욱 속으로 썩어 들어가 손 쓸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교육의 난맥상도 국민의 정부가 입시위주의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과감히 추진한 교육개혁정책이 빚어낸 과도기적인 부작용 측면도 강하다. 누구나 느끼고 있는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교육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교육의 질적 전환과 획기적인 교육부문투자로 연결될 가능성이 위기가 심화될수록 높아질 것이다. 부디 현재 한국이 직면한 어려움이 동이 트기 전에 가장 어두웠던 그러한 상황으로 먼 훗날 기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한국민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http://ny.joongangusa.com/Asp/Article.asp?sv=ny&src=opn&cont=0000&typ=1&aid=20000909124954100101


작성일: 200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