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미주 중앙일보 '영어 고생시키기' (2000년 4월 8일)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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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한국에선 영어가 개인과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하면서 영어 교육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영어만을 쓰는 유치원이 비싼 수업료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최근에는 조기 유학 붐마저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도 이러한 분위기에 부응하여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로만 진행하는 영어 수업도 실시하고 교원 임용 때 면접에서 영어 회화 실력이 부족하면 불합격 처리할 방침도 밝히고 있다. 심지어 영어 공용화론까지 제기되어 열띤 찬반 논쟁을 불러 오기도 한다.


이처럼 본국에서 달아 오르고 있는 영어 학습 열기는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인해 시달림을 당해 온 대다수 교민들에게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나 자신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아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는 입장이므로 영어 문제라면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다.


더욱이 전공이 언어능력이 중요한 경영학이며, 경영학 분야 중에서도 논리와 분석 능력이 중요하고 수업도 주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해야 하는 경영전략이라 영어 구사력은 생존의 문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름 대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미국에 와서 한 1-2년간은 박사과정 세미나에서 교수나 다른 학생들의 발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종종 진땀을 흘리곤 했다.


토론식 수업에서 상대방의 질문이나 코멘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동문서답을 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국인이라도 발표나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지 않으면 언어문제로 보기 보다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미국학생들보다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처음에는 외워서 말하거나 말할 내용을 미리 생각한 후 이야기하였으나, 공부할 양도 많고 토론 수업에서 쉴 새 없이 상대방의 질문과 반론이 쏟아지다 보니 콩글리시나마 즉석에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수없이 갖게 되었다.


이러한 트레이닝을 2년간 거치니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박사과정 3년차부터 학부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영어 실력이 크게 향상되는 전기를 맞았다.


처음 학생들 앞에 설 때는 강의 내용을 미리 외운 후 들어 가 정신없이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학생들이 미리 준비해 간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긴장이 풀려 보다 자연스럽게 수업을 진행하고 즉석에서 농담으로 학생들을 웃기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미국에서 강의한 지도 6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만의 강의노트를 만들어 철저히 준비를 한다.


아직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강의준비에 미국인 동료 교수보다 한 50% 정도는 더 시간이 드는 것 같다.


박사과정에 있을 때나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접해 왔는 데, 필자처럼 영어가 생존에 절박하지 않아서 인지 상당수의 학생들이 영어로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영어로 발표하는 능력은 적극적인 자세로 자주 발표나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나 단어를 많이 암기했어도 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외워서 이야기하는 한이 있어도 외국인 앞에서 자주 발표를 해야 자신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정확한 발음과 액센트, 표현도 중요하나 어차피 어렸을 때 영어권 국가에서 살지 않았다면 미국인처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어는 결국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말하려는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비록 한국식 액센트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더라도 외국인들이 알아 듣는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 말로 하더라도 뜻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듯이 영어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영어로 발표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적어지면 내용을 얼마나 잘 아는 가가 더 중요하지, 영어 실력이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필자가 토론식 수업과 강의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따라서 필자의 강의를 듣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발표와 토론에 참여하도록 수시로 권유하고 있다.


그 학생들에게 농반진반으로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짜로 영어연습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이며, 만약 미국 학생들이 잘 알아 듣지 못하면 답답한 건 그 쪽이지 무엇이 걱정이냐고 자신감을 가지고 영어로 발표하라고 권한다.


영어를 고생시켜야 영어 실력이 는다는 것이 필자가 경험으로 체득한 지론이다.

http://ny.joongangusa.com/Asp/Article.asp?sv=ny&src=opn&cont=0000&typ=1&aid=20000408212150100101


작성일: 200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