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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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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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3/2010090301379.html
선진국 좋은 기업들 매물로 나와
점령군 보내 '빠른 통합' 하기보다 '화학적 통합' 이뤄야 M&A 성공
최근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가 영국의 석유기업 다나 페트롤리엄(Dana Petroleum)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해 화제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작년 중반까지 한국 기업들의 해외 M&A가 상당히 위축됐지만, 최근 롯데그룹을 필두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M&A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M&A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삼성그룹도 해외 M&A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 M&A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중국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중국 기업들은 지난 몇 년 사이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인 볼보(Volvo)를 인수하는 등 기술과 브랜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M&A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나날이 커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M&A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거나,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는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의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10~2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직전 몇 년간은 저금리로 세계에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M&A시장이 과열됐었다. 실수요자만이 아니라 사모펀드들까지 M&A시장에 적극 가세해 인수합병의 프리미엄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시기에 적극적인 M&A를 시도했던 기업들은 치열한 인수 경쟁에서 이기려고 과도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경제 위기가 대공황이나 장기 침체로 비화되지 않는 이상 지금이야말로 필요한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M&A 시장에서 가수요가 빠지면서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재가치가 우수하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거나,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한 기업을 눈여겨볼 만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경기 침체기에 낮은 가격으로 성사된 M&A가 호황기에 이루어진 M&A보다 월등히 높은 가치를 창출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는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해외 M&A 성공의 요체는 무엇일까? 첫째, 옥석(玉石)을 가릴 수 있는 눈이다.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철저히 계산해 적정 가격으로 인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기업 인수로 몸집을 키우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피인수 기업과 인수 기업 간의 시너지(synergy·상승) 효과를 과대평가해 과도하게 높은 경영권 인수 프리미엄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시너지, 특히 매출이 늘어나는 형태의 시너지는 생각한 것만큼 쉽게 실현되지 않거나,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야 실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능하면 보수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특히 국내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해외 M&A의 경우에는 바가지를 쓸 가능성이 더욱 크므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실사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인수한 기업을 한 식구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이다. 전문 용어로는 '인수 후 통합(PMI·Post Merger Integration)'이라고 부르는, 두 조직 간의 문화적, 화학적 통합 작업이다.
좋은 기업을 적정 가격으로 인수한다고 해도 통합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 핵심 임직원들이 반발하거나 이탈하게 되면 M&A는 결국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M&A의 경우보다 세밀한 통합 작업이 요구된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는 물론,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문화 차이까지 화합과 통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이나 일본 기업이 구미의 선진기업을 인수한 사례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중앙집권적 통제 위주의 경영 시스템으로 인해 통합 과정에서 피인수기업 임직원들의 수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빠른 통합을 절대 선으로 생각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본사의 일사불란한 통제하에 주재원들을 점령군으로 보내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특히 한국 기업이 선진국 기업을 인수할 경우 선진국 기업 임직원들이 국가적, 문화적, 인종적 우월감에 빠져서 한국 기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겸허한 자세로 그들을 존중해 줘야 한다. 마음을 먼저 사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M&A에 경험이 부족하고 자신이 없다면 일단 지분 출자나 전략적 제휴 형태로 시작했다가 뒤에 M&A로 진전시키는 이른바 '리얼 옵션(real option)' 형태의 단계적 투자 전략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리얼 옵션이란 금융시장의 옵션 상품 개념을 실물 투자에 적용한 것이다. 미국 최대의 생활가전 업체였던 월풀(Whirlpool)의 유럽 진출이 좋은 사례다. 월풀은 80년대 중반 유럽 최대의 전자업체였던 필립스(Philips)의 생활 가전(家電) 부문의 지분 50%를 인수, 합작 법인을 출범시킨다. 이때 월풀은 3년이 지난 후 월풀의 만족도에 따라 필립스가 원하는 가격으로 나머지 50% 지분을 모두 인수하거나, 아니면 인수했던 지분을 인수 가격 그대로 필립스에게 되팔 수 있는 옵션을 넣었다.
필립스는 월풀에 최선을 다해 유럽 시장 공략법을 전수했다. 또 합작법인의 종업원과 협력업체 등을 다독여 조직 통합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3년 후 월풀은 이 거래에 만족하면서 필립스의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작성일: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