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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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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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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Weekly Biz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 경영전략 “태극전사도 한국 기업도 스피드가 경쟁력” (2010년 7월 3일)
한국 축구의 위대한 도전이 원정 첫 16강을 달성하고 막을 내렸다. 16강전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아쉽게 패했지만,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 축구의 선전(善戰)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열위인 한국 축구가 선전한 이유로 스피드와 조직력을 손꼽았다. 이는 원천 기술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이유와 놀랍게도 닮아 있다. 일본 학자나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이구동성으로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보다 의사 결정과 실행 스피드에서 앞선다는 점을 경쟁력의 주요 원천으로 지적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같은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급속 확산됨에 따라 거리•시간•위치가 '소멸'하고, '규모의 경제'보다는 '속도의 경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요즘처럼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초경쟁' 환경에서는 기업이 신속히 기회를 포착하고 변신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스피드 창출 역량을 핵심 역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는가?
경쟁 우위의 원천으로서의 스피드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가 의사 결정의 스피드이고, 다른 하나는 실행의 스피드이다.우선 전자를 보자. 속도의 경제 시대에 신속한 전략적 의사 결정은 기회 선점(先占)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경쟁자보다 느린 의사 결정은 잘못된 전략만큼이나 기업 경쟁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최근 연구에 의하면 신속한 전략적 의사 결정은 느린 의사 결정보다 높은 수준의 성과로 연결된다. IT산업과 같이 환경이 급변하는 산업에서 더욱 현저히 나타난다. 한국 기업은 전략적 의사 결정의 스피드가 매우 빨랐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이다. 소유 경영자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규모 투자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유 경영자는 전문 경영자에 비해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보다 높은 수준의 위험을 부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의 전문 경영자들이 집단 의사 결정과 합의를 중시하여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하는 동안 한국 기업은 대규모 투자 결정의 타이밍과 스피드가 중요한 반도체, LCD, 디지털TV, 자동차 산업에서 소유 경영자가 기회 선점을 위해 적시에 과감한 의사 결정을 내림으로써 승기를 잡았다. 또한 소유 경영자가 전략적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한편, 단기적•운영적 사항에 대해서는 전문 경영자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해 현장에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 것도 스피드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기업들이 스피드 기반의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데는 두번째의 스피드, 즉 실행 측면에서의 스피드도 중요했다.한국의 경영자들은 단기간에 선발 경쟁자를 추격하기 위해 대담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해 왔다. 도전적인 목표가 제시될수록 조직 내에는 위기감이 조성돼 구성원들의 몰입도가 높아지고 팀워크의 상승 작용이 일어나 속도가 빨라졌다.
한국 기업들은 전략 실행의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첨단 경영 기법들을 적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삼성의 경우 제품 기획, 기술 개발, 생산체제 구축 등 제품 개발 관련 여러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는 '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의 도입을 통해 신제품 개발과 출시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켰다.또한 가치사슬상의 주요 활동들을 한 곳에 위치시키는 집적화와 부품•소재를 그룹 내에서 조달하는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각 부문 간의 신속하고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가능케 함으로써 제품 개발 및 양산체제 구축, 생산성 향상에 걸리는 시간을 경쟁자보다 크게 단축했다.
또한 제품 개발을 사내 여러 팀에 맡김으로써 경쟁을 통해 개발시간을 단축하는 '병행 개발', 기존 보유 기술보다 2단계 이상 높은 수준의 기술 개발에 과감히 도전하여 선진 기업과의 격차를 조기에 좁히는 '월반형' R&D,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은 과감히 외부에서 도입한 후 이를 자체 개발한 기술과 융합시키는 '레고형' R&D방식도 개발시간 단축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ERP(전사적 자원관리)와 SCM(공급망관리) 같은 IT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함으로써 생산과 판매의 시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시장의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 기업이 보여준 놀라운 스피드의 이면에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함께 경영진이 제시한 도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임직원들의 승부욕, 그리고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의 살인적 스케줄을 감내하는 초인적 희생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삼성이 메모리반도체사업에 진입할 때 주 7일, 24시간 근무의 돌관 공사를 통해 공장 건설의 공기를 대폭 단축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축구에서나 기업 경영에서나 스피드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지금 한국 축구와 기업 모두 특유의 스피드와 조직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또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기술 등 기본기를 보다 탄탄히 갖추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축구는 더 많은 선수들을 해외 빅 리그로 진출시켜야 할 것이고, 기업은 글로벌 역량을 갖춘 국내외 우수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성일: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