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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조선일보 Weekly Biz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경영 8 "기업 절반, 자사의 핵심역량도 잘 모른다" (2008년 3월 29일)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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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 1: 일본의 혼다자동차가 자동차 외에 모터사이클, 제트 스키, 스키장의 스노 모빌(snow mobile·雪上車), 잔디 깎는 기계, 로봇 등 언뜻 보아서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사례 # 2: PC용 반도체 산업의 절대 강자였던 인텔이 1990년대 후반 이후 통신용 반도체 산업에는 성공적으로 진입하였으나, 통신장비, 소비자용 정보가전, 인터넷 호스팅 서비스 등에 신규 진출해서 실패한 이유는?


최근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의 심화와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라는 이중고(二重苦) 하에서 어떻게 하면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경제 위기 이후 원가 절감 위주의 구조조정 노력을 통해 수익성을 향상시켰지만, 주력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 신(新) 성장동력을 찾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미래의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업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전략 대안으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기존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거나, 해외시장 진출 등으로 시장을 지역적으로 확장하거나,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 대안 중 어느 것 하나 쉽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경쟁자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 즉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의 강화와 활용만이 이런 전략 대안들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핵심역량이라는 용어는 기업이 직면한 외부 환경 변화가 극심해지고, 글로벌 경쟁이 심화된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 사용되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경영 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경영자들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필자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귀사의 핵심역량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엉뚱하게 답을 하거나 아예 답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면 기업의 핵심역량은 어떻게 파악해야 하며, 핵심역량 기반 전략 수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핵심 성공요소를 파악하라


기업의 핵심역량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문 용어로 '산업 차원의 핵심성공요소(key success factor·KSF)'라고 불리는 '업(業)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다. 업의 개념이란 그 산업에서 성공하고 1등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우 제품 차별화가 쉽지 않은 범용재(commodity)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생산 설비를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한편으로 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수율을 높인다는 것은 불량률을 줄여서 양질의 반도체를 보다 많이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약 30~60일의 기간 동안 600여 개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서 제품이 생산되는데다, 원재료가 비싸기 때문에 수율이 원가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화장품 산업에서 업의 개념은 메모리 반도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화장품 업의 경우 고객의 주목을 받기 위한 차별적인 신상품 개발과 마케팅, 유통경로 확보 등이 중요하지, 수율은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기존 산업의 경우에도 고객의 니즈나 기술적 특성 등 외부환경의 패러다임이 변화해 감에 따라 업의 개념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주기적으로 업의 개념에 변화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업의 개념이 상이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기업의 자원과 역량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즉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는 대규모 생산시설을 확보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력이 중요하다. 또 한편으로 수율을 높이기 위한 공정기술력, 최신 장비, 엔지니어와 오퍼레이터의 숙련도와 정성 등이 확보해야 할 주요한 역량이 된다. 반면 화장품 업에서는 차별적 상품개발력, 마케팅 및 광고 역량 등이 중요하게 된다. 


이처럼 업의 개념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파악되면, 경쟁사의 벤치마킹을 통해 상대적인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업의 개념 측면에서 중요한 역량인데, 자사가 주요 경쟁자에 비해 강점이 있고, 이것이 지속가능하다면 이러한 역량이 바로 핵심역량인 것이다. 예컨대 반도체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선 공정기술력과 직원들의 숙련도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특정 회사가 경쟁자가 쉽게 모방하기 힘든 강점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 기업의 핵심역량이다. 


기업의 핵심역량을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을 의미 있는 단위로 분류하는 가치사슬(value chain)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의 가치사슬을 크게 분류하면 R&D, 생산, 마케팅, 판매, 애프터서비스로 이루어지는 '주(主) 가치사슬'과 인사, 기획 등 '보조적 가치사슬'로 나눌 수 있다. 핵심역량은 이러한 가치사슬 상의 각각의 가치활동의 특정 부분에 체화(體化)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업의 개념 중 가장 중요한 수율은 가치사슬 중 공정기술 개발과 생산 부문에서 주로 결정되는데, 한국 반도체기업은 이 부분에서 차별적인 강점을 쌓아 핵심역량을 확보했다. 


가치사슬 측면에서 핵심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가치활동 간의 '연계성'에서 경쟁자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차별화된 강점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 자동차 업체의 핵심역량은 신차 개발 과정에서 R&D와 생산, 부품업체간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서 개발 속도를 높이는 한편으로 조립하기 쉬운 신차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핵심역량은 전사적인 사업구조, 경영시스템과 조직문화를 기반으로 나오기도 한다. 기업집단이 사업의 복합화를 통해 창출하는 시너지가 그러한 유형이다. 또한, 도요타의 사례처럼 전방위적으로 학습이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경영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을 때 경쟁자가 모방하기 가장 어려운 핵심역량이 창출된다.


■ 핵심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라


이와 같이 핵심역량이 파악되면 기업은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경영자들은 흔히 업의 개념과 핵심역량, 그리고 핵심약점(업의 개념 측면에서 중요한데도 경쟁자에 비해서 취약한 영역) 등을 잘 파악해 놓고도 정작 전략은 잘못된 방향으로 수립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핵심역량이 파악되면 최우선적으로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핵심약점 영역을 보완하는 데에만 전략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경쟁 전략의 가장 중요한 명제인 차별화는 핵심역량을 가지고만 할 수 있지 약점을 기반으로 차별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약점 영역의 경우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쉽게 보완이 가능하다면 내부적으로 보완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부분에 강점이 있는 외부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나 아웃소싱을 통해서 보완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전략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핵심역량의 개념은 성장 전략을 수립할 때에도 매우 중요하다. 신규 비즈니스 진출을 도모할 때 가장 중요한 성공의 요건은 기존 주력사업과 신 사업의 업의 개념이 유사하여 자신이 특정산업에서 축적한 기존의 핵심역량을 신 산업에도 성공적으로 이전, 활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산업용 온도계 시장의 선두기업이었던 M사는 성장이 정체되자 가정용 온도계 시장으로 진출하였다. 가정용 온도계 시장의 특성이 산업용 온도계 시장과 유사하여 핵심역량이 쉽게 이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사는 가정용 온도계 시장에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였다. 산업용 온도계 시장에서는 업의 개념 측면에서 정밀도, 내구성, 주문설계, 전문적 기술지원 등이 중요하고, 가격이나 디자인 등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정용 온도계 시장에서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중요하였기 때문에 M사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도체산업의 지존이었던 인텔이 업의 개념이 유사한 통신용 반도체산업에는 성공적으로 진입하였지만, 업의 개념이 상이한 통신장비 등 여타 부문 진출에는 실패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업의 개념이 달라서 핵심역량을 이전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였던 것이다. 반면 혼다가 자동차, 제트스키, 로봇, 잔디 깎는 기계 등 상이해 보이는 다양한 제품 군에서 고루 성공한 이유는 이러한 제품들이 모두 엔진기술과 모터기술을 핵심기술로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캐논이 세계 최고 수준의 광학기술, 정밀기계기술, 전자기술을 바탕으로 이러한 기술들이 필요한 카메라, 복사기, 프린터, 팩스, 반도체장비 등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이 핵심에 집중하고 핵심을 '확장'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리해 보면 기업이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핵심역량을 잘 파악하고, 기존 산업에서 이를 보다 강화하며, 이를 바탕으로 차별화를 하거나, 업종의 성격이 유사한 신 산업으로 이전해 활용하는 것이다



작성일: 2008-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