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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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2/28/2007122801088.html
최근 한국이 개발한 휴대인터넷 기술인 와이브로(Wibro)가 3세대 이동통신의 세계 표준으로 선정된 데 이어,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지상파 DMB가 국제전기통신연합 (ITU) 표준으로 채택돼 크게 주목받았다. 세계 표준 채택과 세계 표준의 기반이 되는 원천 기술 확보는 왜 중요한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표준 전쟁(standard war)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천기술 확보와 세계표준 장악이 글로벌 경쟁력
21세기는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 글로벌 지식기반경제로의 급격한 이행으로 인해 시장표준이 될 수 있는 차별적인 지식 내지 원천기술을 창출해 내는 혁신능력이 글로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다.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표준을 선도하여 대박을 터뜨린 사례는 지식기반산업을 중심으로 최근에 들어와서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퍼스널 컴퓨터 산업을 들 수 있다. CISC라는 표준을 선도하여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한 인텔과 함께 DOS와 Windows라는 PC운영시스템(OS)의 사실상의 표준을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장기간 최고 80%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향유해 온 것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제조업, 건설업, 농업 등에도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LNG선의 멤브레인 방식 구조설계 표준을 장악한 GTT사는 매년 로열티로 수천 억원대의 천문학적인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반면 과거 한국 기업들은 주로 조립형 제조업에서 이미 개발된 기술을 모방하고 개선해 나감으로써 국제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다 보니 고(高)부가가치, 고기술분야로 제품구조를 업그레이드시켜 나갈수록 로열티 지불비용이 커지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왔다. 특히 한국의 주력수출상품인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에서의 기술무역수지적자의 증대 추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지난 10여 년간 CDMA 휴대폰의 원천기술과 표준을 장악한 퀄컴에 매출액 대비 5% 수준의 로열티를 지급한 결과 그동안 지출한 로열티 총액이 3조원을 넘었다. 최근 한국에도 도입된 3세대 이동통신의 표준인 W-CDMA 휴대폰은 해외 원천기술 보유자들에 지급해야 하는 로열티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 그 결과 2006년의 경우 주로 전자 및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대미(對美) 기술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25억 달러에 달했고, 최근 5년간 그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한국이 주력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 등 지식기반산업에서는 초기에 산업의 표준이 되는 원천기술(특허)을 장악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장기간 고이윤을 향유한다. 반면, 초기경쟁에서의 패자나 후발진입기업은 시장진입이나 생존자체가 어려워지는 이른바 승자독식 내지 수확체증의 법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선도적 한국기업들도 이제 전략 패러다임을 원천기술 확보 및 세계 표준 장악으로 시급히 전환하지 못하면 국제경쟁에서 낙오자가 될 수 있다. 생산기술 등 우리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응용기술 분야에서 급속도로 추격을 해 오고 있는 중국 등에 추월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전쟁 선도하는 유럽연합과 미국, 주도권 놓친 일본
이처럼 21세기 들어 승자독식의 표준전쟁이 보다 가속화하면서, 원천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선점적으로 개발된 기술을 시장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국가와 기업 차원의 노력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공적 표준(de jour standard)’의 제정기관인 ISO, ITU 등 국제표준화기구들의 활동을 주도함으로써 유럽 표준이 세계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유럽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정보통신분야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기업들이 시장경쟁에서 소비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을 다수 장악함으로써 표준전쟁에서 유럽과 쌍벽을 이루어 왔다. 또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미국대학들은 기초연구를 활발히 전개해 미국기업들이 원천기술을 선점적으로 확보하는 데 크게 공헌해 왔다.
반면, 일본은 전 세계적인 표준경쟁에서 주도권 확보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보통신분야 등에서 구미기업들에 구조적인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표준후진국이라는 자기반성 하에 일본정부는 최근 표준화정책을 R&D(연구·개발)정책과 함께 산업기술정책의 양대 축으로 선정해 국가 차원의 세계표준주도전략을 적극 전개해 왔다.
세계 주요국들이 원천기술 확보 및 표준 장악을 국제경쟁력과 관련한 정부정책 및 기업전략의 최우선순위 중 하나로 인식하고 투자를 확대해 온 데 비해, 한국은 이에 대한 인식이나 기반, 투자가 아직 상당히 미흡한 게 현실이다. 필자가 세계은행과 공동으로 미국과 국내에 등록된 특허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 대학 및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술개발측면 생산성은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과정에서 인터뷰에 응한 기업들은 한결같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대학 및 정부연구소들과의 보다 긴밀한 연계가 필수적이며 이들 기관의 기초기술 개발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부분의 기업들도 원천기술과 표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전략적 대응이 아직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새한정보시스템은 MP3 파일 재생 관련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핵심 특허가 해외에 매각됨으로써 이를 사들인 미국기업에 의해 한국 기업들이 특허권 침해 소송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례까지 있었다.
■한국은 정보통신분야가 가능성…M&A, 지분출자도 고려해야
원천기술과 표준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시장을 지배한다는 글로벌지식기반경제에서 한국이 국제경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국가나 기업 모두 원천기술 및 세계 표준 확보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정책 및 기업전략의 핵심에 위치시켜야 한다. 물론, 기초기술 기반이 아직 취약하고 절대적인 R&D투자규모가 적은 우리 현실에서 원천기술 개발 및 표준확보는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자원 투자가 필요하며 실패할 확률도 높은 매우 도전적인 목표이다.
따라서 국가 및 기업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를 엄선해 한정된 자원을 집중시키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필요하다. 와이브로와 지상파 DMB의 세계 표준 채택 쾌거가 보여 주듯이 우리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일부 정보통신부문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판단된다. 또한 한국이 세계 1등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메모리 반도체, 조선업 등도 원천기술 및 표준 확보의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판단된다. 이러한 분야에서 선도적 한국기업들은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 대신 시장·기술 선도자 전략으로 전략방향을 바꾸어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더불어 제품 기획 및 연구개발의 시작단계에서부터 표준경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내의 기초기술 기반이 아직 취약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국내는 물론 기초기술 기반이 강한 해외 대학, 연구소와의 산학연 협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또 해외에 연구소를 설립함으로써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기업에 대한 M&A(인수·합병)와 전략적 지분출자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LG전자의 경우 미국의 제니스 (Zenith)를 인수해 ‘VSB’라는 디지털 방송 수신용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이로 인해 LG전자는 2008년부터 매년 1000억 원대 이상의 로열티 수입이 기대되고 있으며, 이 기술을 바탕으로 디지털 TV용 셋톱 박스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M&A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 4대 보일러 기술 보유 회사인 미쓰이 밥콕을 인수한 두산중공업, 한국 기업이 아직 진출하지 못한 크루즈선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한 노르웨이의 아커 야즈를 인수한 STX그룹이 그 좋은 예이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M&A와 함께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국내외 벤처 기업에 대한 전략적 지분 출자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표준전쟁에서 이겨서 세계 표준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해 높은 매출과 기술 로열티 수입을 창출하려면 먼저 국내 시장을 활성화시켜 국내에서 기술 축적과 함께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 및 연관 서비스 등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기술적 우위성만을 믿고 독불장군 식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산업 생태계 내의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상생의 리더십과 광범위한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특히 표준 설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미의 선도적 기업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때문에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작성일: 200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