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 스피드, 혁신 기업 삼성의 경쟁력 (동아비즈니스리뷰 137호 2013년 9월 12일)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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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패러다임 변화와 스피드의 중요성 증대


1990년대 이후 반도체와 디지털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어 인터넷과 휴대폰, SNS 등 정보통신의 도구가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인류 역사상 제 3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지식정보 혁명 내지 디지털 혁명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디지털화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대규모로 축적되어 빅 데이타가 확보됨으로써 비즈니스의 본질과 속도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빌 게이츠는 21세기 디지털경제의 시대는 ‘속도의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디지털 경제의 시대에는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으로 인해서 거리와 시간, 위치의 소멸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규모의 경제’보다는 시장과 고객에 대한 대응의 속도와 유연성에 기반을 둔 ‘속도의 경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 등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정보력이 과거보다 월등히 향상되어 소비자와 제조업체, 유통업체간의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급격히 해소된 결과,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고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신속히 제공해 주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을 보다 강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SNS가 급속히 보급되고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소위 ‘스마트 혁명’ 내지 ‘스마트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스마트 혁명은 개인의 삶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격변을 가져와 산업과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범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특정 시점의 경쟁우위가 급속하게 창조되고 다시 급속하게 사라져 버리는 소위 ‘초경쟁(hypercompetition)’도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초경쟁 환경에서는 기업이 신속하게 기회를 포착하고 변신하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속도 경쟁 시대에는 의사 결정과 실행의 스피드가 기업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삼성이 주력하고 있는 IT산업과 같이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 변화와 혁신의 속도가 빨라 제품의 수명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선점의 우위가 큰 속도 중시형 산업 환경(high-velocity environment)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산업에서는 신속한 전략적 의사결정 및 실행 역량 확보, 경쟁자보다 빠른 제품 개발 및 기술 혁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시장 및 기술표준 선점이 경쟁력의 관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 보면 디지털화와 글로벌 초경쟁, 환경 변화의 가속화와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는 스피드가 기업 경쟁 우위의 주요한 원천이다. 21세기 디지털 경제 시대에 스피드가 경쟁우위의 원천으로서 갈수록 중요해 짐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서 의사결정이나 실행 측면에서의 스피드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는 기업집단의 경우에는 의사결정 구조 및 관리 프로세스 등에서의 복잡성이 증대되어서 스피디한 의사결정 및 실행이 더욱 어렵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대규모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자에 비해 의사결정과 실행의 스피드를 공히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 올림으로써 경쟁우위를 창출하고 지속시켜 왔다.


신경영 혁신과 삼성의 스피드 경영


신경영 이전의 삼성은 치밀한 분석과 세심한 관리, 잘 정비된 내부통제 시스템에 의거하여 국내의 경쟁사보다도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하였으므로 경쟁자에 비해 경영의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1993년 신경영 혁신 이후 이건희 회장은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스피드와 기회선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신경영 이후 삼성은 반도체, LCD, 휴대폰, 디지털 TV 등 주력사업에서 과감하고도 신속한 투자의사결정 및 경쟁자보다 빠른 신제품 개발 및 양산체제 구축, 출시를 통해서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 최근 삼성이 이러한 주력사업에서 전개해 온 고가 프리미엄 제품 전략은 차별화된 제품력과 더불어 신제품 개발, 양산체제구축 및 출시에 있어서의 스피드(time-to-market)로 인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경쟁우위의 원천으로서의 스피드는 크게 전략적 의사결정 측면의 스피드와 조직역량에 기반을 둔 전략 실행 측면의 스피드로 대별해서 볼 수 있다. 삼성은 두 측면에서 모두 경쟁자보다 앞선 스피드를 기반으로 하여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시장선도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과연 삼성은 어떻게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차별화된 경쟁우위로서의 스피드를 창출할 수 있었는가? 그림 1은 삼성식 스피드 창출 역량의 구조를 도식화한 것이다.



[그림 1] 삼성식 스피드 창출 역량의 구조

 

삼성은 의사결정 스피드를 어떻게 높였는가?

먼저 전략적 의사결정 측면에서의 스피드를 살펴 보자. 속도의 경제 시대에 접어 들면서 신속한 전략적 의사결정은 기회 선점의 측면에서 매우 중시되고 있으며, 경쟁자보다 느린 전략적 의사결정은 잘못된 전략만큼이나 기업 경쟁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 


1)        기회선점 투자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가 메모리반도체의 성공 사례이다. 반도체는 신속한 첨단기술 확보와 대규모의 공격적인 투자가 중요한 산업으로서, 투자 시기가 몇 개월만 늦어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회상실 및 장기적인 경쟁적 지위 하락을 초래하는 고도의 타이밍 사업이다. 스피드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과감하고 신속한 대규모 투자의사결정이 요구된다.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반도체산업의 경우 불황에 빠져 있거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전문경영자들이 경영하던 일본 반도체기업은 광범위한 합의를 바탕으로 신중을 기했기 때문에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반면 소유경영체제를 유지했던 삼성은 과감하면서도 신속한 투자 결정을 내림으로써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신속한 투자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한 성공사례는 삼성이 1990년대에 들어와 본격 투자한 LCD 사업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또한 수년째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 TV의 성공 역시 기회 선점형 투자 결정을 통한 스피드 경영에서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TV 시장의 주력이 디지털 TV로 바뀌는 변화 추세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이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그 결실로 1997년 12월 업계 최초로 디지털 TV를 개발한 뒤, 1998년 10월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 TV 출시 행사를 벌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TV업계의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는 디지털 TV 시장의 선도자가 되었고, 외국 경쟁업체에 비해 개발 및 생산 등 모든 면에서 평균 3~6개월 정도 앞서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소유경영자가 자기 책임하에서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 삼성의 반도체, LCD 및 TV 산업에서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스피드 경제•사회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즉결즉단(卽決卽斷)이 가능한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삼성이 신경영 이후 지향하였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기회선점을 지향하는 스피드 경영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해 보면 삼성에서 '기회선점 경영'의 요체는 한마디로 변화의 핵심을 파악하고, 남보다 먼저 시작하며,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경영스피드에 대한 삼성의 집착은 거의 편집증적인 수준이다. 삼성은 선견, 선수, 선제, 선점을 디지털 사업전략의 4대 원칙으로 삼도록 각 사업부에 하달하였다. 이와 같은 스피드와 기회선점 중시 전략을 통해서 삼성은 ‘저품질  저가  브랜드 가치 악화  판매부진  수익성악화’라는 악순환구조를 ‘소비자파악  적기 출시  시장선점  프리미엄 유통경로 확보  판매증가  브랜드가치상승  수익성 향상’이라는 선순환 구조로 변화시켜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창출할 수 있었다.

2)        현장 의사결정

 이와 동시에 과감한 권한 위양을 통해 보다 단기적이고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관해서는 전문경영자들이나 실무진이 현장에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삼성의 스피드 경영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삼성은 신경영 이후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혁신함으로써 의사 결정 과정을 단순화, 신속화하였다. 특히 결제 단계를 단축하여 사장이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의사결정도 3단계 이상 거치지 않도록 하고 간단한 내용일 경우 구두 및 온라인을 활용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삼성전자는 보고와 회의 문화를 과감히 혁신하여, 아래 사람에게 권한을 대폭 위양하는 디지털 기업문화와 종이없는 회의, 100% 전자결제를 정착시켜 나갔다. 또한 조직 구조 개편을 통해 사업부 차원의 현장완결형 의사결정 구조로 변신함으로써 현장과 스피드 중심 경영체제를 보다 강화하였다. 


삼성은 실행 스피드를 어떻게 높였는가?

경영층의 의사결정 측면에서의 스피드와 더불어 실행 측면에서의 스피드도 삼성의 중요한 성공 요소였다. 삼성이 실행스피드를 높인 이면에는 위기의식 고취를 통해 실행스피드의 제고를 독려한 최고경영자가 있었다. 삼성은 회장이 심어준 위기의식 속에서 도전적 목표 설정을 통해서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스피드를 높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스피드 지향적인 목표를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다. 도전적인 목표가 제시되고 마감일이 촉박할수록 조직 내에는 위기감이 조성되어 구성원들의 몰입도가 높아지고 팀워크의 상승 작용이 일어나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초기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승자독식’으로 갈 수 있는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의 성격을 지닌 IT산업 분야에서는 일단 사업에 뛰어들고(라인을 구축하고) 경영정상화(안정화)방안을 추후에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방식이 메모리 반도체산업 진입한 이후의 삼성의 일반적인 사업 진입 패턴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발 업체를 조기에 따라 잡기 위해서 돌관공사를 통하여 공기를 최대한 단축하는 한편, 필요한 경우에는 주 7일 근무와 24시간 라인가동체제를 유지하기도 했다. 삼성이 보여 주는 놀라운 스피드의 이면에는 이와 같이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임직원들의 승부욕과 초인적인 노력, 남다른 근면성, 희생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실행스피드에서 중요한 또 한가지 요소는 커뮤니케이션 스피드이다. 삼성은 싱글 삼성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경영 용어(‘삼성인의 용어’) 등을 공유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스피드를 높일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는 경영방식의 전사적 통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스피드 증진이다. 예를 들어 삼성은 1996년 이후 6시그마를 본격 추진하여 그룹의 모든 임직원이 6시그마라고 하는 공통의 사상과, 언어, 문제해결방법을 공유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스피드를 높일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실행 스피드를 높이는 데는 글로벌 차원에서의 통합 ERP와 SCM 시스템 구축을 통한 IT 기반 실시간 정보 확보도 큰 도움을 주었다. 


스피드 창출을 위한 주요 인프라와 시스템, 어떻게 구축하였는가?

그러면, 삼성은 어떻게 이와 같이 의사결정 및 실행의 스피드, 특히 신제품 및 신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스피드를 극대화할 수 있었는가? 그림 2에는 삼성의 스피드 촉진 메커니즘이 정리되어 있다. 먼저 가치와 조직 문화 측면에서는 도전적 목표 설정과 위기의식 조성, 현장 중심적 권한 위양과 의사결정단계 축소, 임직원들의 1등을 향한 열망과 희생정신 및 근면성, 6 시그마 공유 등 공통의 언어와 경영 관리 방식 등이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경영 시스템 측면에서는 준비경영과 선행개발, 집적화 (clustering) 및 수직적 계열화를 통한 협업 스피드, 목표지향적(goal driven) R&D와 R&D 프로세스 고도화, 글로벌 SCM/ERP 시스템 구축을 통한 IT 기반 프로세스 혁신 등이 실행 스피드를 촉진시킨 대표적인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일부 메커니즘을 아래 간략히 설명하였다.


[그림 2]  스피드 촉진 메커니즘

 


1) 준비 경영 및 선행 개발

이건희 회장은 “현재의 실적에 자만하다가는 언제든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5~10년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면서 준비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5-10년 후 무엇으로 세계 1위를 할 것인지에 대한 중장기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첨단기술과 최고 인재를 조기에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회장의 준비경영 철학이 조직에 녹아 들어 삼성은 종합기술원, 반도체연구소, DMC연구소 등 핵심적인 R&D 조직이 주도하여 10년 이후를 내다 보는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작성하고 이를 수시로 업데이트해 가면서 선행적으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해 왔다. 예를 들어 2006년부터 스마트폰 관련 핵심기술을 본격적으로 선행 개발해 왔기에 2008년 이후 애플 쇼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또한 2008년에 종합기술원과 DMC연구소가 협업하여 TV화질기술을 휴대폰에 최적화한 mDNIe 기술개발을 선행 확보한 이후, 2010년 이후 갤럭시 시리즈에 적용함으로써 화질 우위의 제품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2) 집적화(Clustering)

삼성은 주요 가치사슬상의 활동들을 집적화(clustering 또는 agglomeration)함으로써 물류 스피드는 물론 문제 해결 및 지식 공유 등을 통해 실행의 스피드를 높이고 있다. 반도체사업의 경우 기흥 및 기흥에 인접한 화성에 16개의 공장(fab)이 모두 모여 있고, 이에 더해 R&D부문도 함께 모여 있다. 또한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부문 본사도 기흥에 소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본사-R&D-생산공장의 집적화는 타 반도체 기업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삼성은 이러한 집적화를 통하여 R&D부문과 생산부문간의 신속하고도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이끌어 내어 경쟁업체보다 제품개발 및 양산 체제 구축, 공정의 안정화와 수율 향상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집적화의 이익(agglomeration economies)은 충남 탕정에 LCD 등 디스플레이 패널의 생산라인을 집적화시킨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삼성은 R&D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집적화의 이익을 중시하여 관련 연구팀을 모두 한 곳에 모으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이다. 수원에 집적화되어 있는 CE부문과 IM부문의 주요 연구소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관련 사업부문의 연구소들이 한 건물 내지 단지에 모두 집적화됨으로써 대면 접촉을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이 원활해졌고, 그 결과 기술의 융복합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함은 물론 제품개발의 스피드를 높일 수 있었다.

3) 수직적 계열화

집적의 이익과 더불어 완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주요 부품과 소재를 그룹 내의 타 사업부나 관계사가 생산하는 수직적 계열화 체제의 구축도 협업을 통해 스피드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일단 주요 부품 및 소재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통의 언어와 문화, 사고방식을 공유함에 따라 외부 회사와 협업을 할 때 보다 커뮤니케이션 및 조정 측면의 비용 및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스마트폰 개발 시 아몰레드 디스플레이 패널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부문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의 지위를 구축한 삼성디스플레이와 시스템반도체사업부와의 협업을 통해 성능 차별화는 물론 개발 스피드를 높였다. 이러한 협업 시너지가 삼성이 선발자인 애플을 추격하는데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였다. 또한 TV일류화 과제를 추진할 때에도 종합기술원, DMC연구소, 시스템LSI사업부, VD사업부가 긴밀히 협업하여 2008년도에 A1이라고 명명된 DTV 용 핵심 SoC 반도체를 14개월만에 개발 완료하고 6개월만에 TV양산에 적용하였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사업부들이 각자 보유했던 개발 노하우와 지식을 한 곳에 모으고 신속히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과거 36개월이 걸렸던 칩 개발부터 상품화까지의 개발기간을 20개월로 크게 단축하였다. 

4) 병행개발과 월반형/레고식 R&D

신기술 및 제품 개발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삼성은 종종 내부 경쟁 체제를 도입하여 특정 기술이나 제품에 대해서 복수의 팀이나 조직이 병행 개발(parallel development)을 하게 했다. 예를 들면 1메가 D램의 개발 과정에서는 국내 연구팀과 미국 현지연구소인 SSI의 연구팀이 개발 경쟁을 하였다. 이를 통해 개발의 속도를 높였다. 더욱이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거한 내부적 도태 메커니즘의 도입을 통해 보다 우월한 기술과 제품이 선택되도록 했다. 또한 삼성SDI와 삼성전자가 TV용 패널로서 대체적인 관계에 있던 PDP 패널과 LCD패널 사업을 경쟁적으로 수행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한 개발 스피드 증진을 도모하였다. 

2004년 이후 2008년까지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기술개발 및 시장선점을 위해서 삼성전자 LCD 총괄과 삼성 SDI가 직접적인 경쟁을 하도록 허용하였다. 이를 통해 OLED 부문에서 두 회사는 서로 경쟁적으로 세계 최초 기술 개발 및 제품 출시 기록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대규모 양산 투자가 필요해지자 2008년 삼성SDI와 삼성전자의 OLED 사업이 합병하여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출범하였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합병 이후 SDI가 개발한 제품기술과 LCD부문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및 양산기술력을 결합하여 아몰레드 시장을 거의 독점할 수 있었다. 

삼성은 선진기업이 이전을 기피하는 기초 핵심기술 분야에서는 자금과 인력을 집중 투자하는 월반형 R&D를 통해서 기술 수준을 2단계 이상 앞으로 높임으로써 선진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조기에 좁히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체 기술 개발에 너무 시간이 걸린다는 판단이 서면 설사 비용이 몇 배 더 들더라도 과감히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도입한 후 이를 자체 기술과 융합시키는 레고식 R&D 방식으로 기술 추격의 과정을 앞당겼다. 또한 경험 많은 엔지니어나 천재급 과학자를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고 영입함으로써 기술 확보 및 소화, 개발의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최근에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더욱 강조되고 복잡성이 높아지고 상황에서 삼성이 개방적 혁신 (open innovation)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외부 기술의 신속한 확보를 과거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

5) 동시공학

삼성은 R&D 프로세스를 고도화하여 동시공학 (concurrent engineering)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왔고, 최근에는 PLM (product lifecycle management) 시스템을 도입하여 개발기간을 더욱 단축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연구개발 단계를 끝내고 생산체제 구축 단계로 넘어간다. 이에 비해 동시공학은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신속하고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제품개발 및 생산 체제 구축 등 여러 활동을 병렬적으로 동시에 진행하는 기법으로서 1990년대 이후 노키아 등 혁신 지향적인 선진 기업들이 앞다투어 도입했다. 

     예를 들어 삼성의 핸드폰 개발 과정을 보면 동시공학이 잘 활용되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R&D 부문은 물론 마케팅, 상품기획, 디자인, 생산, 구매 부문이 동시에 참여하여 병행개발을 하고, 이를 통해 신제품 개발 및 양산체제 구축, 출시에 걸리는 시간(time-to-market)을 대폭 단축했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각 부문이 순차적으로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 신제품 기획, 개발 및 출시의 전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고객의 니즈가 상품 기획 및 개발, 디자인 단계에 정확히 반영되기 어렵다. 반면 동시공학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마케팅 부문이 상품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므로 보다 고객 지향적인 제품 개발이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생산 및 구매 부문과 R&D 부문의 협업을 통해서 각 공정에 다음 공정의 기술적 문제나 특수사항을 반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생산하기 쉬운 제품의 설계가 가능해지고 생산 단계의 불량률이 낮아짐과 동시에 보다 빠른 시간 내에 양산 및 부품 조달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6) 선행적 IT 인프라 구축을 통한 프로세스 혁신

삼성전자가 스피드를 핵심역량으로 만드는 데에는 글로벌 차원에서의 통합 ERP와 SCM 시스템 구축을 통한 IT 기반 전사적 프로세스 혁신이 큰 도움을 주었다. 삼성처럼 전세계 법인의 ERP를 표준화하여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는 글로벌 일류 기업에서도 흔하지 않은데, 2001년 글로벌 ERP 시스템이 개통된 후 전세계 모든 해외법인의 생산, 매출, 재고 등 핵심 경영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구매와 관련된 다양한 IT 인프라 구축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구매 측면의 스피드와 유연성을 제고했다. 삼성전자는 1998년부터 글로벌 SCM을 추진해 오면서 국내외 전 사업장에 걸쳐 ‘3일 확정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고객에서부터 협력회사에 이르는 전체 사이클의 스피드를 높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글로벌 생산기지와 협력업체를 연계시켜 신속하게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최대한 제조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또한 전세계 사업장의 모든 생산, 판매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기존의 학술연구에 의하면 경영자가 실시간 운영 정보를 확보할수록 보다 양질의 전략적 의사 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기에 삼성이 IT기반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실시간 정보를 확보한 것은 스피디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2008년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제/금융 위기로 인해서 세계 각국에서 내구재에 대한 수요가 격감하면서 시장에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극심해 졌을 때 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ERP와 SCM 시스템을 십분 활용하여 신속하게 생산과 판매, 재고를 조절함으로써 경제위기로 인한 타격을 소니 등 경쟁자에 비해서 상당폭 줄일 수 있었다. 삼성은 본사에 글로벌운영센터 (Global Operation Center)를 설치하여 핵심 경영진들이 함께 모여 ERP와 SCM 시스템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결언

스마트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디지털화된 정보가 실시간 전파되고 이로 인해 비즈니스의 본질과 속도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경제의 시대에는 ‘규모의 경제’보다는 시장과 고객에 대한 대응의 속도와 유연성에 기반을 둔 ‘속도의 경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속도의 경제 시대에 접어 들면서 신속한 전략적 의사결정은 기회 선점의 측면에서 매우 중시되고 있다. 최근의 글로벌경제위기 및 지식기반경제의 이행 등으로 인한 극심한 패러다임 변화는 불확실성의 정도를 높여 주고 있고 환경변화의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속도의 경제 시대,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 시대에서 한국 기업이 생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가 그러하였듯이 환경 변화에 능동적이고도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민첩성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한국 기업 특유의 강점인 전략적 의사결정 및 실행 측면의 스피드 창출 역량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빨리빨리’의 국민성과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 문화 및 근성은 이러한 시대에는 결코 단점이 아니고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성공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하여 전략적 민첩성과 스피드를 한국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다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작성일: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