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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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반도체 산업의 지존 인텔이 소비자용 정보가전, 인터넷 호스팅 사업 등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이유는?
2 : 삼성이 LCD 사업에 후발 진입했음에도 단기간에 세계 1등이 된 비결은?
3 : 미디어 산업에 신규 진입하여 통신·방송 등 콘텐츠 유통 채널과 영화·음악·게임 등 콘텐츠 창출 사업을 결합한 수직 계열화를 추구했던 비방디가 2002년 233억 유로의 프랑스 역사상 최대 적자를 발생시켜 대규모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까닭은?
■ 성장의 한계 직면한 한국 기업
최근 한국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어떻게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가”이다. 경제위기 이전까지 한국 기업들은 박리다매로 매출을 늘리며 신사업에 적극 진출하는 등 성장 일변도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경제위기 와중에 양적 팽창 위주의 공격적 전략을 펼쳤던 기업들 중 상당수가 망했다. 또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지배구조가 확산됨에 따라 성장보다는 수익성을 강조하고, 신사업보다는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략의 초점이 변했다. 그 결과 선진국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더 낮아지고 이익률은 더 높아졌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주력 사업들이 속속 성숙기에 접어드는 데다, 중국의 부상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 등으로 많은 기업들이 성장의 정체 국면을 경험하고 있다. 산업수명주기의 성숙기에서는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가 쉽지 않고 원가 경쟁도 심화되기 때문에 성장의 정체가 곧 수익성 저하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성숙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유기적 성장과 비(非)유기적 성장
성장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은 제품·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통해 기존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 전략이다. 닌텐도가 DS와 위(Wii)라는 신개념의 게임기를 개발, 작년에만 매출을 90% 이상 신장한 것이 좋은 예다. 또 기존 제품으로 해외 시장 등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유기적 성장에 속한다. 반면 매출의 획기적 도약을 꾀하는 기업들은 M&A(인수합병)나 신사업 진출과 같은 비유기적 성장 전략에 의존한다.
모든 기업에 통용될 수 있는 성장 공식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유감스럽게도 성장의 묘약은 없다. 기업마다 자신의 전략·역량과 역사적 배경에 맞는 최적의 성장 전략 조합(mix)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 경영위기를 맞았던 두산과 태평양은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은 후 상반된 성장전략을 구사했지만, 두 그룹 모두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태평양의 경우 주력사업의 R&D(연구개발)와 마케팅역량을 강화하고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유기적 성장에 주력한 반면, 두산은 한국중공업·대우종합기계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M&A함으로써 사업구조를 소비재 위주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성장전략은 같은 산업 내에서도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제철업에서 미탈스틸은 주로 M&A를 통해 고도 성장을 이루어낸 반면, POSCO는 지금까지 유기적 성장 전략을 구사해 왔다.
■ 비(非)관련 다각화 성공확률 10%도 안돼
GE(제너럴일렉트릭)·씨티그룹 등 서구 기업들은 M&A를 가장 중요한 성장전략의 축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미국 기업들의 M&A 성공확률은 30~4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국경을 넘어가는(cross-border) M&A의 경우 문화적 통합의 어려움까지 가중돼 성공 확률이 더욱 낮아진다.
서구 기업들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경제위기 전까지 M&A보다는 자체적인 신규투자를 통한 신사업 진출, 즉 신사업 내부진출 전략을 많이 써왔다. 삼성의 반도체, 현대의 자동차·조선 등이 내부진출의 성공적 사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사업 내부 진출의 성공확률은 M&A보다 낮다. 미국의 경우 인접영역으로의 확장이나 관련 다각화의 성공확률은 25% 이하로, 내부진출 형태의 비(非)관련 다각화의 성공확률은 10% 이하로 보고되고 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자동차·조선 등으로 비관련 다각화를 멋지게 성공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그 당시에 내수시장이 철저히 보호돼 있었던 데다, 정부가 정책금융과 산업정책 등으로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 정주영·이병철 같은 걸출한 경영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경영자들이 그룹의 역량을 신사업에 결집시키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시장이 개방되고 정부 지원은 어려워졌으며 지배구조의 변화로 신사업에 대한 전 그룹적 지원이 힘들어졌다.
■ 신사업 발굴 때는 기존 핵심역량 활용가능성 따져야
주력 사업이 여전히 이익을 내는 캐시카우(cash cow)로 남아 있을 때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게 최우선의 전략적 명제이지만,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욱 신중해야 한다.
신사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신사업을 검토할 때 규모·성장률·수익성 등 ‘사업의 매력도’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에 따른 핵심역량의 이전 가능성도 중시해야 한다. 내게 매력적인 산업은 남에게도 매력적이다. 따라서 매력적인 신사업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들게 된다. 최근 고유가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입하고 있는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기업의 성공은 신사업에 필요한 역량을 얼마나 빨리, 충분히 확보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기존 사업과 신사업의 관련성이 높아 기존 사업의 역량이 신사업으로 이전될 때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같은 업종에 속해 있거나 가치사슬상에서 인접해 있어 수직적 계열화가 가능한 회사가 반드시 관련성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련성을 따질 때 중요한 기준은 신사업의 핵심 성공요소나 업(業)의 개념이 기존 사업과 얼마나 유사한가 여부다. 반도체산업의 인텔이 최근 소비자용 정보가전 등으로 신규 진출했다가 실패한 것도 바로 업의 개념이 기존 사업과 달라 핵심역량의 이전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유통채널을 장악한 기업들이 콘텐츠 창출 사업으로 수직적 계열화를 추구했다가 실패한 것도 업의 개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과 LG가 LCD산업에 후발주자로 들어가 성공한 비결은 반도체산업에서 축적했던 세계 최고의 공정기술력을 공정 특성이 유사한 LCD산업으로 단시간에 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사업 진출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기존사업과 역량, 고객기반, 유통 채널 등의 측면에서 관련성이 얼마나 높은가”이다. 즉 신사업에 독자진출하는 경우 관련성이 높고 기존 사업과 신사업간에 시너지가 창출되는 분야를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기존 사업과 관련성이 높지 않은 분야에 진출하고 싶다면 이 분야에서 역량을 이미 확보한 다른 기업을 M&A해서 진입하는 것이 내부 진출보다 바람직하다.
■ 실패시 탈출방안 미리 갖고 있어야
M&A나 신사업 진출시에 진입비용과 리스크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진입비용이 너무 높아서 미래에 발생가능한 이익을 모두 잠식한다면 신사업 진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영자들은 신사업 진출을 고려할 때 신사업의 매력에 도취된 나머지 진입비용이나 실패시의 위험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비방디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비방디는 미디어산업에서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1998년 이후 약 990억 달러 규모의 M&A를 단행했다. 당시 미디어·인터넷 분야의 주가 버블이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방디는 인수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내재가치보다 100% 이상 높은 인수 프리미엄을 주면서까지 M&A를 성사시켰다. 그 결과 과도한 진입비용 때문에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상황에서 미디어 산업의 주가 버블이 붕괴하고 연달아 불황이 찾아오자 그룹 전체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이로 인해 비방디는 수도·폐기물 처리 분야에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던 세계 최대의 유틸리티 사업마저 매각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신사업 진출은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따라서 신사업 진출시에는 “이 신사업 진출에 실패했을 때 모기업은 건재할 수 있는가?” “실패시 투자 자금을 회수하면서 빠져 나올 방안(exit plan)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만일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적이라면 신사업 진출보다는 차라리 기존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작성일: 2007-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