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재용 교수님의 칼럼 및 기사

미주 중앙일보 '한국 하이테크 산업의 미래' (2000년 8월 5일)

Date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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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달 대만을 방문해 현지의 하이테크 산업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초빙 연구원으로 잠시 방문했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에서 후원하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현지 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연구소의 마사루 요시토미 소장이 동행을 하였다.


마사루 소장은 과거 일본 경제기획청 차관을 지내고, 일본을 대표하는 관변 이코노미스트로 유명한데다가 현재 아시아개발은행의 부총재급이어서, 경제부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을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다.


대만에서 만난 관료나 기업인,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만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하이테크 산업의 저력을 역설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는 듯 했다.


한국의 경제기획원에 해당하는 경제건설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다가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고문으로 물러난 쉬브 박사가 술자리를 겸한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쉬브 박사는 한국의 재벌위주로 형성된 하이테크 산업과 비교해 볼 때 중소기업 및 중견 대기업으로 구성된 대만의 경쟁력과 유연성이 훨씬 뛰어나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몇 년 전 한 서양 학자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심층 비교한 후 대규모 투자능력을 갖춘 재벌 위주의 한국 반도체 산업이 대만보다 잠재력이 크다고 결론 내렸었다. 이에 대해 쉬브 박사가 아시아 경제 위기를 들며 그 결론이 틀렸다고 말할 때 씁쓸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만을 방문하기 전 한국에서 만나 본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경제 위기가 닥친 후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장기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투자를 대폭 삭감했다며 우려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게 매우 친절하고 협조적이었지만, 동시에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한국에 대한 강한 경쟁심과 불편한 감정을 은연중에 드러내곤 했다.


사실 과거에 접한 대만 전문가들이나 그들의 글에서는 재벌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자기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한국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을 추월해 미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대만계 하이테크 기업의 약진은 눈부실 정도다. 최근 비즈니스위크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대만반도체주식회사(TSMC)가 사상최고의 실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5위)를 제치고 주가 총액 측면에서 2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


반도체 주문생산부문에서 세계 1위인데 다가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디자인 기술력으로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그러다보니 과거 일방적으로 기술을 전수해 주던 일본 기업들이 이제는 대만과의 보다 수평적인 제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봄 인도의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한 칼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 유학하고 하이테크 기업에서 기술개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던 대만계 기술자들이 1980년 대 후반이후 대거 귀국해 대만의 하이테크 산업의 경쟁력을 단시간에 세계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더욱이 대만계 기술자들은 유난히 끈끈한 결속력을 보여 미국에 남은 사람들과 대만으로 돌아간 사람들간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활발한 교류가 있어서 미국에 있는 기술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미국기업의 기술 노하우를 대만의 친구에게 슬쩍 흘려주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 온 후 실무경력을 쌓은 자국계 엔지니어가 거의 없는 일본으로서는 자국 내에서의 기술개발에 점차 한계를 느껴 이러한 장점을 보유한 대만의 하이테크 기업과의 제휴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만기업들이 미국과 일본기업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데 반해,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과의 교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제 한국도 대만과의 산업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대만 반도체 산업의 성공에 기반이 되었던 벤처 캐피털을 통한 자금조달과 하이테크 벤처 기업의 활발한 창업현상이 지난 1년간 한국에서도 급속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벤처 붐이 정착될 수 있다면 소수 재벌의 수직계열화 체제가 가지는 경직성을 극복하고 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산업구조로 이행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대만에서 보았듯이 대기업과 벤처기업,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간에 적극적인 제휴와 협력관계가 활성화되고, 미국등 선진국의 선도기업과 대학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인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한국의 하이테크 산업의 미래를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만의 성공 요인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http://ny.joongangusa.com/Asp/Article.asp?sv=ny&src=opn&cont=0000&typ=1&aid=20000805123506100101


작성일: 2004-02-26